참 많이 좋아졌다. 라고는 말하고 있지만 역시나 A를 키우는 일은 쉽지 않다. 사실 매일매일이 도전이고 매일매일 리셋되는 기분이라 뭔가 남들도 이렇게까지 힘들게 키우나? 싶기도 하고 오은영선생님이 ADHD아이는 일반아이를 키우는 데 드는 노력의 10배 든다고 하셨던 말씀도 매우 공감이 된다.
물론 A는 폭력성도 없고 약물치료도 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아이의 10배의 노력까지 든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고 한 2배나 3배정도 힘들다고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7세때보다 8세때 더 힘든점이 있었고 8세때보다 9세때 더 힘든점이 있다. 물론 좋아지는 부분도 많고 기특하게 어겨지는 부분도 많지만 9세인데 왜 이걸 못하지? 8세인데 당연하게 해야하는거 아니야? 이런 생각들이 밀려올때마다 지치고 힘이 빠진다.
키워보지 않은 사람은 알기 힘든 ADHD아이를 키울 때 힘든 점에 대해 정리해보자.
ADHD아이를 키울 때 힘든 점 10가지 1. 생활습관이 안 잡힌다.
하나의 생활습관을 만들어주기 위해 들여야하는 노력이 매우 크다. 예를 들면 옷을 갈아입고 나면 벗은 옷은 빨래통. 이라는 이 간단한 규칙 하나를 7세때부터 9세때까지 매일, 아침, 옷 벗을 때 마다 말해주어야 한다. 약물의 효과가 나지 않는 시간인 오전과 밤 시간에 보통 옷을 갈아입고 씻게 되는게 이럴때마다 쓴 수건, 벗은 옷 등을 말해주지 않으면 그대로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 약물효과가 있는 낮에는 본인이 스스로 벗은 옷을 빨래통에 가져다놓지만 그렇지 않은 시간에는 엄마의 잔소리가 없다면 방치되는 것이 다반사이다.
그나마 학교갈 시간 10분전부터 이닦고 세수하고 옷입기, 먹고 난 그릇은 개수대에 넣기 등 이런 습관은 7세때부터 2년동안 거의 매일 반복하고 안하면 잔소리하고 못하면 혼내가며 가르쳐놓아서 이젠 알아서 하는 편인데 그 외의 다른 습관들은 여전히 나의 잔소리가 없으면 잘 되지 않는다.
오히려 4세인 둘째 C가 형인 A에게 이거 갖다 놔야지, 엄마 형아 이거 정리 안해요~ 하고 이를 정도이다.
2. 정말 쉴 새 없이 말을 한다.
정말 A는 쉬지 않고 말을 한다. 말을 하느라 밥을 안 씹고 뒤늦게 다 먹어야해서 우겨넣는다거나 동생이 엄마와 무엇을 하고 있는데 말을 하고 싶어서 그걸 방해하면서 불쑥 말을 꺼낸다거나, 엄마가 일하고 있는데도 와서 쉼없이 자기 이야기를 한다거나 이런 상황이 매일 반복된다.
문제는 이런 대화가 긍정적이거나 생산적인 방향이 아니라 본인의 관심사만 담긴 일방적인 이야기일 때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좋아하는 만화의 캐릭터 이야기를 하루종일 하거나 어린이날 선물로 받을 것에 대해 혼자 신나서 말을 하거나 하는 경우다.
보통은 엄마는 관심이 없으니 그 이야기 말고 다른 이야기를 하자고 화제를 돌리거나, 지금은 니 이야기에 집중할 수 없으니 조금 기다려달라고 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에 관심이 있는 꼭 확인하고 이야기하는 게 좋다고 아이에게 좋게좋게 설명을 하지만 나의 인내심은 그리 깊지 않아서 주말이나 평일 저녁에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결국 "그만 좀 해!!!"하고 소리를 지르게 된다...
3. 언제나 자신의 욕구가 먼저다.
둘째가 있는 녀석이라 형의 역할을 어쩔수 없이 수행해야하는 경우가 있다. 약물효과가 있는 시간에는 동생에게 양보도 하고 배려도 하는 녀석이지만 약물효과가 없는 오전이나 저녁시간에는 자신의 욕구가 늘 먼저다. 동생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을 갑자기 뺏어서 논다거나 재미있는 장난이 생각나면 동생이 다칠 수도 있는데 그걸 한다거나 이런 식이다.
저녁메뉴를 결정한다거나 아침에 먹고 싶은 음식을 말하거나 어딜 놀러가기로 하고 장소를 결정한다거나 할때도 늘 본인이 가고 싶은 곳, 본인이 먹고 싶은 곳이 제일 우선이다. 같이 먹을 사람들의 취향이나 같이 갈 사람들의 사정은 내가 콕 집어서 이야기해주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입장은 아예 떠올리지를 못하는 듯이 느껴진다.
그나마 지금은 아이가 ADHD라는 걸 알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동생은 매운 걸 못 먹지? 라든가, 할아버지 생신이라 모인거니까 니가 우선이 아니라는 건 알지? 하고 아이가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다시 말하게 하면 그나마 아 맞다! 하면서 다른 사람을 생각하긴 한다. 만약 ADHD라는 걸 몰랐다면 이기적이라든가, 자기만 생각한다거나라고 오해받을 수 있었을 것 같다.
4. 절차를 무시한다.
앞의 내용들과 중복되는 것이기도 하다. 본인이 하고 싶은 무언가가 생기면 중간에 필요한 절차들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본인이 하고 싶은게 떠올랐고 그걸 말하고 싶은데 엄마가 화장실에 있다면, 문을 두드려서 엄마의 양해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화장실 문을 열고 하고 싶은 말을 내뱉어버린다. 이럴때 화를 내지 않고 지금, 어떻게 하는게 맞다고 생각해? 하고 물어보면 바로 미안하다고 하면서 문을 닫고 똑똑 한 후 질문을 하긴 하는데 이런식의 절차를 무시하는 행동이 지속적으로 나온다.
하나의 놀이를 시작하고 그 놀이를 정리하지 않은 채로 다음 놀이로 넘어가는 것 역시 내가 생각하기에는 절차를 무시하는 행동이다. 레고를 하다가 종이접기가 하고 싶어지면 바로 종이접기로 넘어가버린다. 레고 조각들을 정리하라고 하면 종이접기가 끝나면 같이 하겠다고 말하지만 종이접기를 하다가 바로 칼싸움에 꽂히면 레고와 색종이는 그대로 둔 채 칼을 들고 거실로 나가버리는 방식이다.
어지른 사람이 치운다. 라고 매일 반복해서 가르쳐준 덕에 본인이 어지른 것을 치우는 걸 이젠 화를 내진 않는다. 하지만 놀던걸 알아서 정리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모습을 보게 되려면 아직 몇 년은 더 기다려야할 것 같다.
5. 본인의 노력보다 늘 성과가 아쉽다.
A는 똑똑한 아이다. 하지만 ADHD라는 특성때문에 아이의 능력을 100% 발휘하지 못한다. 난독이 약간있고 주의집중력이 떨어지면 난산도 살짝 보이는 것 같다. 그래서 똑같은 글씨도 아빠가 써주면 읽기 힘들어하고 나와 매일 반복해서 했던 연산퍼즐도 학교에서 풀려고 하면 집중을 못해서 다 못 풀고 들고 온다.
다른 사람들보다 주의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더 큰 노력이 필요하고 그렇게 노력을 했음에도 늘 결과가 아쉬운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보니 아이의 자존감도 조금씩 상처를 입는다. 그런 상황이 덜 일어나도록 같이 노력을 더 해보려고 하지만 아이도 엄마도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조금 지치게 마련이다.
받아쓰기나 수학시험 등에서 70점이라는 성적을 받아들고 오면 아이가 노력한 부분에 대해서는 칭찬해주어야하겠지만 사실 엄마입장에서는 복장이 터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 속상한 맘을 드러내면 아이는 노력하고자하는 의지마저도 잃어버릴 것 같아서 그 마음 역시 꼭꼭 숨기고 다시 노력해보자고 아이를 다독일 수 밖에 없다.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고 앞으로 학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빈번하게 일어날거라 생각하면 벌써부터 숨이 막힌다.
기대를 좀 내려놓으면 될 일이라고 남편은 쉽게 이야기하지만 A는 지능도 높고 욕심도 큰 아이다. 그런 아이에게 70점짜리 시험지로도 만족하라고 이야기할 순 없다. 아이가 원하는 건 100점짜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런 아이를 돕는 방법은 잘 맞는 약물용량을 찾고 매일 실수하지 않도록 같이 공부해주는 방법뿐이다. 매일 매일 지치지 않고 이걸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아이도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으면서 이 과정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사라지지 않는다.
6. 친구관계에서 문제가 생길까봐 늘 두렵다.
얼마전 학교에서 사고를 치기도 했고(장난치다 다른 친구 얼굴을 다치게 한 것) 사회성도 걱정이 되어 사회성치료도 다녔지만 본인 감정을 잘 컨트롤하는 걸 여전히 어려워한다. 속상한 기분이 그대로 태도가 되는 것이 얼마나 인간관계에 악영향을 미치는 지 너무 잘 알고 있기에 속상하면 숨을 쉬어서 감정을 추스리라고 매일 이야기해주지만 늘 불안한다.
처음엔 나도 방법을 몰라서 어려웠지만 이젠 나와 같이 있을 때 감정의 기복이 생기면 내가 중심을 잡아줄 수 있다. 아이의 부정적인 기운을 감지하고 그걸 털어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숨을 크게 3번 쉬거나, 잠시 자리를 피해서 자기 방에서 생각을 좀 하거나, 왜 지금 그런 감정이 생기는 지 말을 해달라고 하거나, 나는 원래 니가 이렇게 부정적인 아이가 아니라는 걸 안다고 말하면서 조금 더 배려를 보여달라고 요청하거나 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ADHD 3년을 지나면서 아이와 함께 만들어왔다.
하지만 친구들이나 학교에서는 아이 혼자 이 부정적인 감정과 싸워야하고 그럴때 효과적인 방법은 심호흡이 거의 유일하다. 아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들은 너무나 빈번하고 ADHD아이의 경우 주의집중력이 낮기 때문에 본인 감정을 컨트롤해야하는 그 짧은 시간에 다른 자극들이 들어오면 다시 감정이 증폭되서 겉잡을 수 없이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버리기 쉽다. 숨을 쉬어. 코로 들이마시고 내뱉어. 그래도 감정이 조절이 안되면 또 숨을 쉬어. 이건 니가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야. 니 감정을 다스려봐. 감정이 너를 마음대로 하지 않게 꽉 붙잡아. 이렇게 알려주지만 아이가 이 무기를 잘 쓰려면 역시 시간이 좀 걸린다.
본인 감정조절은 물론 친구의 감정도 읽어내야하는 점점 복잡한 인간관계를 쌓아가는 시기이다보니 혹시나 겉돌진 않을까? 같이 놀 수 있는 친구가 없는 건 아닐까 걱정이 매일매일 쌓인다.
7. 아이는 커가고 나는 늙어간다.
젊은 엄마들이라면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벌써 40대 중반의 나이라 체력이 떨어져간다. 위의 말한 많은 단점들을 케어하고 커버하고 고칠려면 그만큼의 체력과 정신력이 필요한데 나는 이미 너무 늙은 엄마라 이런데 쓸만한 기력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 게다가 둘째도 여전히 손이 많이 가는 나이이기 때문에 앞으로 둘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한 4년정도는 체력과 정신력의 한계에 매일 부딪히게 될 것 같다.
잘자고 맘이 편한 날 아이가 만드는 문제는 작은 찻잔의 태풍에 불과해서 내가 잘 컨트롤하고 찻잔 밖으로는 넘치지 않게 충분히 조율이 가능하지만 내 컨디션이 나쁜 날에는 내가 오히려 찻잔이 흔들고 깨서 태풍이 온 집안을 휩쓸고 다니게 되어만들어 버린다.
ADHD아이들은 특히나 사춘기때 감정기복도 크고 부모와의 대립도 날카로워진다는데 그때가되면 나는 50이 넘어 폐경기에 닿을 것 같다. 엄마는 폐경기, 아이는 사춘기일때 집안 분위기가 진짜 엉망이라는데 그게 얼마 안남았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아이와 공부로 씨름하는 것도 벌써부터 힘들고 생활습관을 잡아주려고 잔소리하는 것도 지치는데 아직 초등학교 2학년이라 이제 시작한거나 다름없다니 정말 막막하기 이를바 없다.
이렇게 ADHD아이를 키우기 힘든 점은 크게 정리해보면 7가지정도.. 세분화하면 한 만가지 정도 되려나 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A는 참 이쁘다. 7세때에 비하면 이젠 감정조절도 스스로 할 수 있게 된 부분이 많고 정리도 매일 반복하다보니 그나마 조금씩 나아진다. 공부도 스스로 공부시간이 되면 알아서 공부하러 오기도 하고 동생도 옛날에 비해서는 좀 더 챙기려고 한다. 더디지만 아이는 자라고 ADHD라 또래보다 2년정도 느리다고 하니 천천히 더 좋아질 꺼라는 기대 역시 해보게 된다.
초등저학년에 약물을 시작한 경우 효과가 더 좋다는 말을 굳게 믿는다. 왜냐면 초등 고학년때는 좀 맘이 편해지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아이들이 다 그런건 아니라고 하지만 매일매일 조금씩 좋아지는 부분이 있다는 걸 엄마인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A가 닌텐도 마리오카트를 처음 해봤을때가 기억난다. 처음엔 조작방법도 서툴고 코스도 아예 몰라서 여기 부딪히고 저기 부딪히고 뒤로도 가고 빙글빙글 돌기도 했었는데 조금 그러더니 점점 장애물도 잘 피하고 속도도 제법 내기 시작한다. 그렇게 A도 ADHD라는 자동차를 타고 이런 저런 실수와 실패들을 통해 더 이 자동차를 잘 길들여 몰고 다니는 방법을 깨달을 것이다. 그때까지 좀 고생을 하자. 어쩌겠나. 이 아이를 세상에 내놓은 건 나의 결정이었으니 책임도 나의 몫이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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