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A에게 늘 각별했다.
늦은 결혼에 아이 생각은 없던 남편은
A가 태어나고 나서
아이가 주는 행복감은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늘 내게 말하곤 했다.
육아도 많이 도와주고
A와 늘 함께 놀아주는 좋은 아빠였다.
과거형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좋은 아빠였다. 정말.
하지만 동생 C가 태어나고
A의 문제행동들이 두드러지면서
나도 남편도 아이에게 날카로운 말을 던지는 일이 많아졌고
결국 소아정신과를 방문해 아이가 ADHD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남편은 "그래 원인을 알게 되었으니 이제 좋아지는 일만 남은거야"라고 말했다.
하지만 원인을 안다고 아이의 모든 행동에 너그러워지긴 쉽지 않았다.
남편도 나도 그 때는 7살의 A가 보이는 행동이
우리가 예상하는 거슬리는 행동의 대부분일꺼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8살이 되고 머리가 커지면서
A는 우리가 예상 못했던 문제행동들이 조금씩 늘어난다.
작은 거짓말을 한다거나
본인이 원하는 방식이 아니면 짜증을 낸다거나
하고 싶은일에 꽂히면 주변 사람에 대한 배려를 잊는다거나
하는 일들이 약효가 없는 시간,
즉 아빠가 퇴근한 시간, 출근하기 전 시간에
매우 자주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남편은 이제 꺾여가는 나이이기도 하고
업무 특성상 체력소모가 크기때문에
오전 출근 전에는 좀 조용히 쉬면서 출근 준비를 하고 싶어하는데
A는 그 사정을 받아주지 않는다.
동생 C는 아직 어리기도 하고
아빠가 누워있으면 옆에서 얌전히 앉아서
아빠에게 어리광을 피우며 시간을 보내는데
A는 아빠위에 올라타거나 일어나라고 종용하거나
아빠가 누워있는 침대 위에서 점프를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지만
체력이 있으면 아이의 에너지넘치는 행동을 받아주게 되지만
그게 없을 땐 짜증으로 받아친다.
그래서 아침에는 그 부분으로 A가 아빠에게 싫은 소리를
듣게 되는 일이 참 잦아서
남편에게 새벽까지 TV를 보는 일은 줄이고
잠을 더 자서 아이에게 집중해줄 것을 부탁하지만
남편 역시 본인 시간이 그 시간 밖에 없다는 생각이라
중간에서 조율해야하는 입장인 나는 조금 답답함을 느낀다.
아이에게 싫은 소리를 한 남편 역시 마음이 좋지 않기 때문에
다시 A를 찾아가 아빠의 진심을 전달하고
아이와 화를 푸는 과정을 늘 하곤 있지만
A의 마음속에 아빠에 대한 속상함이 생겨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퇴근하고 피곤할텐데도 아빠가 자기랑 놀아주는 건 까맣게 잊고
아침에 안 놀아준다고 징징대는 A에게
천천히 아빠는 아침에는 컨디션이 좋지 않으시기도 하고
학교 갈 준비해야하는 바쁜 아침에는 놀기 어렵다고
차분히 설명해주면 이해하는 듯 보이지만
다음날이 되면 리셋되는지라
매일 똑같은 일상이 반복이다..
그리고 C와 A가 자야하는 시간에는
C를 재우는 게 더 최우선이기때문에
내가 보통 C를 맡고 남편이 A를 맡게 되는데
둘이 이 과정에서 가끔 트러블이 있다.
어제같은 경우는
A가 혼자 책을 읽고 그 내용을 부모님과 이야기하는 숙제가 매일 밤 있어
아빠와 함께 하라고 이야기하고 C를 재우러 들어갔는데
A가 방문을 두드리며 억울하다고 소리치는 것이다.
화를 꾹 참고 왜 그러냐고 묻자
자기는 학교에서 책을 반듯이 들고 읽으라고 배웠는데
아빠가 자꾸 책을 눕혀서 읽으라고 한다고
그걸 싫다고 했더니 아빠가 계속 강요하면서 화를 낸다고 했다.
남편은 남편대로 책을 들고 보면 거실 불에 가려져서
책이 어둡게 보이니까 눕혀서 읽으라고 말해준 건데
그걸 싫다고 소리지르는 A에게 화가 난 상태였다.
A와 남편 모두에게 멈추라고 이야기하고
중재해주려는 순간
남편은 다시 본인이 책을 눕히라고 한 이유를
큰 소리로 A에게 설명해줬고
A는 또 큰소리로 싫다고 했다.
결국 남편은 싫다고 도망가는 A의 다리를 책으로 때렸고
A는 아빠 밉다고 아빠 다리를 발로 차버렸다.
이 모든 상황을 자려다 깨서 나온 C가 봤고
나는 둘을 겨우 뜯어말리고 서로 차분하게 이야기를 시킨 후
A와 방에 들어가
속상한 마음을 달래주고
다음부터 아빠의 방식이 싫을 땐
화를 내는 대신 싫으니까 멈춰달라고 공손히 이야기하자고 말해주고
잘자라고 하고 나왔다.
이 상황을 다 보고 난 C는 결국 잠이 다 깨버려서
한참 시간이 지난 후 잠이 들었고
아이들이 잠든 시간 남편과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에게 처음 의도가 좋았던 건 아는데
너무 강요하는 식의 말투는 아이가 제일 거부감이 심한 거니까
아이가 한 두번 싫다고 하면
위험한 상황이 아닌 이상 멈추자고 말했다.
남편도 본인이 조금 과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리고 내가 C를 재우는 동안 A에게 사과도 했다고 한다.
아이가 약기운이 없을 땐 우리의 말이 잘 들리지 않고
본인 생각에 빠져있는 경우가 많다.
일부러 그러는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아이가 우리의 말을 잘 듣지 않으면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어 감정이 잘 추스러지질 않는다.
나도 흥분하면 아이에게 좋은 말이 나가지 않을 때가 있고
남편도 마찬가지라 둘 다 서로 자제하자고 하는 중인데
매일 일이 벌어지고 나서 후회하는 일이 참 많다.
남편도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아서
남편에게 더 노력하고 아이맘을 읽어주라고 하기에도 어렵고
8살이고 ADHD까지 있는 A에게
엄마 아빠를 좀 이해하고 자제하라고 하기도 어렵고
내가 더 중간에서 조율을 해야한다는 말인데
나도 참 쉽지가 않다.
오은영박사님도 지나영교수님도
본인들이 ADHD아이를 키웠다면
우리랑 똑같았을꺼야! 라고 남편하고 농담처럼 말하는데..
과연 그랬을까...
나와 남편이 아직 수양이 덜 된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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