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ADHD진단을 받았을 때, 사실 나는 나를 닮아서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아이가 보여주는 다양한 증상 들 중 일부는 내가 이미 어렸을 때 우리 부모님으로부터 굉장히 많이 지적을 받았던 지점과 맞닿아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쉬지 않고 떠든다거나,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빠지면 다른 일로의 전환이 매우 어렵다거나, 지겨운 걸 잘 참기 어려워한다는 점은 나와 굉장히 닮았다.
ADHD는 유전력이 매우 강한 질환이고 여동생의 아들인 조카 역시 ADHD진단을 받았기 때문에 의심은 하고 있었지만 진단까지는 받아보지 않고 있었는데 둘째와 ADHD인 첫째를 동시에 커버하면서 내 일과 집안 살림을 한꺼번에 해내야하는 상황들이 점점 버거워지고 감정조절 역시 쉽지 않아서 그걸 억제하는데 너무 큰 에너지를 쓰게 되니 나도 ADHD라면 진단을 받고 도움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다.
그래서 이번에 아이가 진료를 받을 때 진료를 같이 받고 싶어 병원 어플에서 예약을 신청하려 했는데 아이를 담당해주시는 교수님은 예약이 불가능했다. 아이와 진료차 병원에 들른 날 간호사선생님께 먼저 여쭤보니 이미 내년 상반기까지 예약이 다 차버려서 아마 이번 진료에는 진료받기 어려울꺼라고 하셔서 큰 기대를 안 했는데 아이가 상담받고 교수님께 말씀드리니 바로 초진과 예진을 진행해주셔서 같은 주에 바로 주의력검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결과는 나 역시 ADHD. 주의집중력이 모든 분야에서 떨어져있다고 한다. 검사를 받을 때는 좀 집중이 안되긴 했어도 꽤 잘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것이다. 두뇌의 다른 부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작업기억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든 분야에서 주의력이 매우 낮은 걸로 나왔다. 아들의 검사 결과과 비교해보니 내가 더 심한 느낌이었다. 나름 충격이었다.
어린시절에는 ADHD의 대표적인 증상인 부주의함과 충동성, 과잉행동이 모두 있었던 것 같은데 대학에 진학하고 사회생활하면서 증상이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딱히 큰 문제를 일으키거나 지적 등을 받은 적이 없고 그냥 나의 고유의 성격같은거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나처럼 사회생활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육아 등 으로 인해 루틴의 큰 변화가 생기는 경우 치료되지 않는 ADHD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종종 있다고 한다.
결국 나는 지금까지 ADHD증상이 있는 엄마로써 ADHD아이를 키워온 셈이다.
나같은 ADHD가 있는 사람이 부모가 되어 ADHD증상이 있는 아이를 키울 땐 어떤 어려움이 생겨날까? 이미 알고 있는 것도 있지만 한 번은 정리해보고 싶어진다.
ADHD가 있는 부모가 ADHD아이를 키울 때 1. 어려운 점
ADHD가 있을 때 생기는 주의력과 충동조절, 감정 조절 등의 문제는 같은 ADHD아이를 키울 때 더 크게 두드러질 수 있다고 한다.
- 정리와 계획: ADHD가 있는 부모는 기본적으로 정리와 계획을 어려워하며 이는 ADHD아이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ADHD는 루틴을 통해 일상을 유지하고 시간을 관리하는 것이 증상 조절에 큰 도움을 주는데 부모가 이런 부분에 약점을 이미 가지고 있으므로 ADHD를 가진 아이에게 더 나은 일상관리방법을 가르치기 어려울 수 있다. 이로 인해 깨끗하고 깔끔한 상태로 아이의 집중력을 높일 수 있는 집안환경을 만들기 어려울 수 있고 학교의 준비물이나 수업시간을 지키는 등 일상관리에서 부모로써 아이에게 도움을 주기 어려울 수 있다.
- 충동성: 부모와 아이의 충동성이 모두 관리되기 힘드므로 아이가 충동적인 행동이나 태도를 보일 때 이를 부모가 관대하게 넘어가주거나 이해하기 보다는 같이 맞부딪혀서 감정의 충돌을 만드는 경우가 종종 생겨난다. 이로 인해 ADHD아이입장에서는 일관성없는 부모의 태도로 인해 혼란스럽고 충동성을 조절하는 방법 역시 배우기 어려워진다.
- 감정조절:ADHD는 감정을 조절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는 부모와 자식이 모두 기분 변화나 좌절, 또는 격앙된 감정 반응을 자주 경험한다는 뜻이다. 부모로써 아이의 감정을 받아주기보다는 아이의 태도로 인해 본인의 감정이 롤러코스터처럼 변화하고 분노나 짜증을 조절하기 어려워서 양육에서의 어려움이 훨씬 커질 수 있다. 또한 아이에게 감정을 다루는 방법을 가르치기 어렵기 때문에 ADHD아이들이 감정조절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하는 것을 방해한다.
- 일관성없는 양육: 충동성과 감정조절의 어려움은 결국 아이에게 일관적인 양육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규칙을 정하더라도 부모가 그 규칙을 깨는 경우가 종종 생겨나며 보상 등을 통해 아이의 태도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시도하더라도 일관적이게 유지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것이 보통이라 ADHD아이들의 부정적인 행동을 강화하게 만드는 경우들이 생겨난다.
- 과몰입과 산만함:ADHD부모는 아이와 마찬가지로 본인이 관심있어하는 분야에는 과몰입하기 때문에 아이와의 상호작용에 소홀히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또한 산만하고 주의집중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아이에게 필요한 만큼의 주의과 관심을 기울이는 게 어려울 수 있다. 이는 ADHD아이처럼 손이 많이 가고 신경을 더 많이 써야하는 아이를 키울 때 부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할 때가 많다.
- 인내와 스트레스: ADHD는 특히나 스트레스에 취약하기 쉽다. 같은 ADHD아이가 보여주는 다양한 상황 앞에서 인내심있게 아이를 지켜봐주기 어렵고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한다. 일반적인 부모입장에서 ADHD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ADHD가 있는 부모가 ADHD가 있는 아이를 키우는 것에서 느끼는 스트레스가 더 크고 이를 관리해야한다는 심리적인 부담감이 훨씬 높게 느껴질 수 있다.
- 실행기능의 어려움: ADHD는 우선순위를 정하고 계획하며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보다 늘 어렵다. 이로 인해 ADHD가 있는 부모는 일반적인 아이를 키울 때도 양육의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ADHD아이의 경우 역시나 같은 어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다양한 과제를 수행할 때마다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 죄책감: ADHD를 앓고 있는 부모는 본인이 아이에게 ADHD를 물려주었다는 죄책감과 동시에 자녀에게 좋은 모범이 되지 못한다는 부채감과 양육 과정에서 느끼는 어려움이 부모로써 느껴서는 안될 감정이라는 마음 등으로 인해 일반적인 부모들에 비해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더 크게 겪을 수 있다.
ADHD가 있는 부모가 ADHD아이를 키울 때 2. 장점
하지만 일반적인 부모에 비해 ADHD부모가 ADHD아이를 키울 때에 가지게 되는 장점 역시 존재한다.
- 깊은 공감: ADHD를 가진 부모들은 다른 부모들에 비해 ADHD아이가 가지는 어려움에 대해 더 쉽게 공감할 수 있다. 이런 공감은 부모와 아이 사이의 유대감을 강화하고 아이가 이해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에 ADHD아이의 성장을 더 도울 수 있다.
- 창의력과 문제해결력: ADHD가 있는 사람들은 매우 창의적이며 고정관념을 벗어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양한 각도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ADHD아이를 키울때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일반적인 방식이 맞지 않는 ADHD아이에게 ADHD부모는 더 다양하고 창의적 방법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이해도: ADHD는 일반인의 시선에서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질환이다. 하지만 ADHD를 앓아온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의 다양한 행동을 자신의 관점에서 이해하기 어렵지 않으며 ADHD에 대해 아이에게 설명하고 이해시키기도 훨씬 수훨하다. 이런 ADHD에 대한 깊은 이해는 아이의 고립감을 줄이며 멘토로써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 경험과 의지: ADHD를 앓는 부모는 일반적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자신의 방식대로 삶을 개척하는 방법을 이미 경험해본 사람들이다. 이는 일반적인 부모보다 ADHD아이에게 좋은 지침이 되어 줄 수 있는 경험이 다양하다는 뜻이며 아이에게 현실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기 더 수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 높은 에너지와 열정: ADHD가 있는 사람들은 일반인에 비해 기본적으로 에너지가 높은 편이다. 이는 활동적이고 재미있는 부모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ADHD아이의 높은 에너지를 받아내는 데도 일반적인 부모보다는 훨씬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 과몰입: 산만함이 문제가 될 때가 많지만 과몰입할 때도 많은 ADHD의 특성 상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나 육아 자체에 하이퍼포커스가 될 경우 부모와 자식간의 상호작용에 굉장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아이와의 좋은 관계를 쌓는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 멘탈관리: ADHD를 앓아온 부모는 이미 살아오면서 ADHD로 인한 많은 어려움을 극복해낸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는 아이가 ADHD로 인해 좌절했을 때 강력한 정서적 지원을 가능하게 한다. 일반적인 부모보다 아이의 마음을 더 크게 공감할 수 있기 때문에 아이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시간을 훨씬 단축하게 만든다.
- 유머감각: ADHD를 경험해온 부모는 삶의 다양한 어려움을 대처하는 좋은 유머감각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이는 ADHD아이를 키우면서 경험하는 다양한 상황들을 웃으며 넘길 수 있고 스트레스 역시 낮출 수 있는 좋은 자산이다.
ADHD가 있는 부모가 ADHD아이를 키울 때 3. 결론은 잘 키울 수 있다는 것.
ADHD라고 진단을 받으니 뭔가 억울했던 기분이 풀리는 마음이다. 원하는 수준의 대학에 가지 못한 것도 언어나 취미 등에서 늘 다양한 시도를 해도 결국 끝을 완전히 맺기 힘들었던 것도 다 ADHD 탓으로 돌릴 수 있을 것 같아서 뭔가 이거 만능아이템인데? 싶기도 하다.
내가 우리 아들처럼 7살에 ADHD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적어도 지금보다는 뭔가 계획을 짜는게 덜 스트레스 받았을 것이고 공부할 때 딴 생각이 계속 드는 것도 좀 덜했을 것이고 집안 살림도 조금은 더 정리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성인 ADHD가 있는 사람들은 늘 해결하지 못한 숙제를 안고 있는 기분으로 산다. 그런데 ADHD아이를 키운다면 그런 숙제를 아이에게 쥐어주는 것 같아 미안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나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고 있다. 내가 해결하지 못했던 숙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를 아이에게 쥐어줄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나의 ADHD적인 증상들이 아이를 키우는데 끼치는 나쁜 영향은 최대한 줄이도록 노력해봐야겠다. 우선은 약물치료를 시작했고 계속 해왔던 것처럼 아이의 루틴을 유지하고 다정하면서도 지켜야할 것은 꼭 지키는 엄마로 살겠다. 아이에게 계속 다정해지기 위해 감정을 억지로 누르는 일이 힘들었는데 약물치료를 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하니 뭔가 희망이 보인다.
9살의 나에게 필요했던 엄마가 되겠다. 나의 부모님도 나를 많이 사랑하셨지만 ADHD는 모르셨다. 하지만 나는 ADHD란 녀석이 어떻게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지, 그걸 조절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 지 우리 부모님보다는 많이 알고 있다. 오히려 내가 ADHD진단을 받으니 더 또렷해진다. 아이의 ADHD진단과 치료를 일찍하길 참 잘했다는 것과 지금까지 아이와 함께 해 왔던 노력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점이 말이다.
잘 키워보자. 나보다는 ADHD라는 녀석을 잘 다루는 사람으로 자라도록 잘 서포트해보자. 단점은 잘 관리하고 장점은 잘 살려보자. 화이팅. 할 수 있다. 잘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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