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짧게 1박2일의 여행을 다녀왔다. 여름 방학이 짧기도 했고 남편도 나도 일정 빼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집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다녀왔는데, 언제나 그렇듯 ADHD아이와의 여행은 참 쉽지 않다.
그도 그럴것이 약을 먹이고 가면 불안과 예민함이 증폭되어 낯선곳을 편하게 받아들이기 힘들어하고 약을 빼놓고 가면 겉잡을 수 없이 제멋대로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나마 2년동안 약을 먹이고 조금씩 쌓아온 노하우로 그래도 조금은 즐겁게, 화내지 않고 ADHD아이와 여행하는 방법을 정리해본다.
ADHD 아이와 화내지 않고 여행하는 법 1. 이동시간은 짧게, 놀이감은 충분히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포인트 중 하나이다. 차량이든 비행기든 과잉행동이 있는 ADHD아이들에게 2시간 넘게 같은 자리에 앉아있는 건 좀이 쑤신다. 얌전히 해야한다는 것을 알지만 자기 마음대로 조절이 안되는 ADHD아이들의 특성상 혼자 앉아있다면 앞자리의 가족들에게 줄기차게 본인의 요구사항을 요청하고 형제나 자매와 뒷자리에 함께 앉아있는 경우 계속 옆 사람을 건들이거나 짜증나게 만드는 일들을 반복하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이동시간 자체는 무조건 짧게 잡고 총 이동거리가 긴 여행이라면 중간중간 짧게라고 쉬어서 아이의 과잉행동을 조금 잠재울 필요가 있다. 휴게소나 졸음쉼터 등에 정차하고 아이가 과잉행동을 해소할 수 있도록 가볍게 몸을 움직일 수 있게(계단/짧은 달리기/스트레칭 등) 해주는 것이 좋다.
더불어 차안에서 멀미가 나지 않는 수준에서 몰입할 수 있는 놀이감을 준비해서 여행하는 것을 추천한다. 게임이나 책 등은 어지러울 수 있으니 엄마나 동생과 끝맛잇기 놀이나 시장에 가면 놀이, 또는 지나가는 차량의 색깔 맞추기 등 아이가 지루해하지 않고 즐겁게 몰입할 수 있는 간단한 게임이나 그림이나 종이를 접을 수 있는 간이식 테이블 등을 준비해주는 것도 좋다.
물론 너무 흥분하면 소리가 커지고 게임에 지거나 하면 감정조절이 어려워 오히려 운전에 방해가 될 정도로 짜증이나 화를 내는 경우들이 있으니 적당히 져주고 잘한다고 격려해주는 당근요법이 필요하다.
ADHD 아이와 화내지 않고 여행하는 법 2. 여행정보를 공유하라.
ADHD아이는 루틴과 예상가능한 상황을 많이 파악하는 것. 이 두가지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행은 이미 루틴이 깨져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아이가 앞으로 예상 가능한 상황을 스스로 판단하기 쉽지 않아서 과잉행동이나 부주의함, 주의력 부족이 더 두드러지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을 예방하려면 아이와 여행을 떠나기전 함께 여행 코스를 짜거나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서 공유해주는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 몰입 상황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힘들어하기 때문에 이런식으로 일정을 공유해주지 않으면 하나의 상황을 마무리짓고 다음 코스로 여행목적지를 옮길 때 짜증이나 분노, 화 등의 방식으로 더 놀고 싶다고 떼를 부릴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일정은 몇시까지 무엇을 하며 놀 것이고 다음 일정은 몇시에 시작하니 그전에 몇분 전에는 이곳을 떠나야한다고 사전에 고지를 해주면 아이 역시 어느정도 일정을 이해하고 아쉬워하면서도 생각보다 빠르게 다음 코스로 이동하는데 동의한다.
그리고 여행이라고 할지라도 기본적인 루틴인 잠자는 시간과 식사시간, 씻는 순서 등의 규칙은 최대한 지켜주려고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행이라고 너무 늦게 잔다거나 씻는 것을 건너뛴다거나 하면 여행에선 괜찮을 지 몰라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원래의 루틴으로 되돌리기 위해 여독이 풀리지도 않은 채 아이와 실갱이를 해야하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ADHD 아이와 화내지 않고 여행하는 법 3. 모두를 위한 여행임을 가르쳐주자.
자기중심적인 ADHD아이의 특성상 여행에 왔을 땐 보통 자신의 욕구충족이 늘 앞선다. 그래서 다른 가족 특히 동생이 있는 경우, 동생을 배려하지 않고 본인이 원하는 메뉴만 우기거나, 본인이 보고 싶은 것 위주로 하겠다고 떼를 쓰는 경우가 많다.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이번의 여행은 가족 모두를 위한 여행임을 미리 알려주자. 여럿이 함께 가는 여행에선 본인이 원하는 걸 양보해야하는 경우도 있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 다른 가족들도 양보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이다.
아주 단순한 부분이지만 ADHD아이들은 신나는 상황에서는 눈 앞의 이익, 당장의 즐거움에 시선을 몽땅 뺏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른 가족에 대한 배려를 완전히 잊는 경우가 많고 이것은 아이가 "이기적"이라기 보다는 아이의 ADHD로 인해 생기는 문제이기 때문에 무조건 그 상황에 닥쳐서 혼내기보다는 사전에 아이에게 알려주고 그 상황에선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
ADHD 아이와 화내지 않고 여행하는 법 4. 어쩔수 없지 뭐~ move on!
ADHD아이들은 어떤 상황이 자신의 마음대로 풀려나가지 않았을 때 속상한 마음을 추스리는 것이 쉽지 않다. 즐겁게 하루 일정을 다 보냈더라고 마지막에 본인이 하고 싶었던 것을 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생기면 딱 그 상황 하나에만 몰입해서 하루의 기분을 망쳐버리는 경우들도 많다.
평소에 늘 아이와 하는 이야기인데 그럴땐 '어쩔 수 없지 뭐' 모드를 켤 때라고 이야기해준다. 내 맘대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울어봤자 떼부려봤자 소용이 없을 땐 그 상황을 '어쩔 수 없지 뭐~"하고 넘어가자는 이야기다. 물론 쉽지 않지만 그래도 여행이라는 늘 변수가 도사리는 상황에서 이걸 아는 아이는 조금이라도 빨리 상황에서 빠져나온다.
갑자기 비가 내려 일정을 변경해야한다거나 원하는 활동 등이 기구 유지보수 등의 이유로 참가할 없게 되었을 땐 "어쩔 수 없지 뭐~"모드를 켜자고 이야기하고 넘어가야할 때라고 알려주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이의 속상한 마음은 꼭 인정해주고 넘어가는 것이다. 다른 상황으로 넘어가자고 감정까지 그냥 한꺼번에 넘겨버리면 절대 안된다. 그러면 반발심만 더 커지게 된다.
충분히 아이의 속상한 마음에 공감하고 아쉬워해준 후 그래도 어쩔 수 없으니 다른 즐거움으로 향해보자고 이야기하면 아이도 생각보다 쉽게 마음을 움직이다. 공감이 없이 어쩔 수 없지 뭐 모드만 켜면 100% 화를 내니 참고하자.
ADHD 아이와 화내지 않고 여행하는 법 5. 엄마의 체력을 아끼자.
늘 느끼지만 체력이 떨어지는 순간 마음이 딱딱해지고 아이의 행동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하기 힘들어진다. ADHD아이와의 여행은 적어도 ADHD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겐 휴가라기보다는 극기훈련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여행일정을 소화하는 동시에 루틴이 깨진 아이의 변덕을 온전히 받아내야하기 때문이다.
지치지 않게 차에서라도 쉬어야하지만 사실 차에서도 아이의 갑갑함을 풀어주어야하기 때문에 쉴 수 없다. 출발 전날과 여행지에서의 밤은 무조건 쉬어라. 그리고 남편과의 여행이라면 적어도 ADHD가 아닌 아이만은 전담해 줄 것을 약속하자. 그리고 일정을 너무 빡빡하게 잡지 말고 숙소에서 좀 쉬어가면서 여행하는 것을 추천한다.
이번 여행의 경우 첫날엔 카페 들렸다 점심 먹고 숙소에서 쭉 쉬었다. 날씨가 덥기도 했지만 나의 체력이 좋지 않아서도 있었다. 숙소에서 난리를 치면서 시끄럽게 굴긴 했지만 아파트같이 층간소음 걱정이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그나마 크게 혼내지는 않았다.(혼낼 일이 없었다는 건 절대 아니다.) 종이접기나 게임, 숙소에서의 물놀이 등을 적절히 병행해서 나의 체력을 그나마 아낄 수 있어서였다.
작년, 재작년, 올해 초의 여행들과 비교하면 나도 아이도 점점 ADHD에 대한 노하우와 여행에 대한 노하우가 쌓여서 여행이 점점 즐거워지는 것 같다. 작년 이맘때 제주도 여행에서 야간 체험프로그램에서 아이에게 엄청 나게 화가 나서 남편이 코스에서 이탈했던 것과 비교하면 올해 다닌 몇번의 여행은 아주 환상적일 정도로 좋았다고 말할 수 있다.
ADHD란 녀석은 여전히 내게 까다로운 존재지만 그래도 조금은 어떤 녀석인지 알게 되는 점이 있다보니 조절하는 방법이 조금씩 생겨난다. 빨리 사라지긴 어려울 것 같으니 이렇게 노하우를 정리해서 꺼내보면서 잘 다루는 방법을 배우는 수 밖에.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다른 누군가에게도 도움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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