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가 소아정신과 진료를 받고 나서
처방받은 첫 번째 약은
메디키넷 5mg이었다.
처방하기 전 의사는
몸무게만큼 늘려야
제대로 된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쓰긴 어렵고
천천히 용량을 늘려야
부담이 없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부작용으로 식욕이 부진하거나
잠을 못 자고 불안한 증상 등이
생겨날 수 있다고 말했다.
ADHD 아이들은 작고 마른 경우가 많다.
그 이유까진 모르겠지만
엄마들의 걱정들을 읽어보면
거의 다 또래보다
작다, 말랐다가 대부분이더라
A 역시 진단을 받기 전부터
워낙 입도 짧고 작고 마른 아이였다.
아이 성장 발달에
키와 몸무게를 쳐보면 늘 25% 아래로 나와
뭘 먹여야 하나
늘 고민이 되는 아이였지만
시부모님과 도련님이
모두 많이 작은 편에 속했고
남편과 나의 키는
대한민국 표준 키인데다
(남편 175/ 나 162)
둘 다 초등학교 때는
늘 앞자리에 앉을 만큼
조금 늦게 자란 케이스였기 때문에
잘 먹이다 보면
자라겠지 하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메디키넷 복용을 시작하고 보니
워낙 작고 마른 아이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부분이 있었다.
특히나 점심에는 약 기운 때문에
밥을 거의 먹지 않기 때문에
엄마 맘에는
약 기운이 없는 시간에는
잘 먹여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이 싹트게 된다...
아침에 약 먹이기 전에는
워낙 부산스럽고
밥 먹다가 자리를 이탈하여 딴짓을 하거나
의자에 앉아서도
다리를 다른 의자에 걸친다거나
무릎을 세우고 앉는 등
바르지 않은 자세로
느릿느릿 억지로 밥을 먿던 A인지라
약 기운이 없을 때라도
잘 먹여야 한다는 스트레스로
아이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 부분이 늘어났다.
그렇게 윽박지르거나
달래거나 잔소리하면서
겨우겨우 8시 전에 아침을 먹이고
8시에 딱 맞춰 약을 먹이면
스쿨버스를 타는 8시 50분쯤부터
약 기운이 도는지
갑자기 매우 고분고분하고
조심성 있는 상태로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이후 등원시키고 나서
2시쯤 하원 시킬 때 가보면
세상 착한 아들의 모습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치원 내에서도 변화가 너무 커서
담임선생님 외의
다른 반 선생님들도 그 변화를 느낄 정도로
달라졌다고 했다.
"선비 같아요"라고 하셨다나...
원래 ADHD 아이들은
규칙을 지키는 걸 어려워하는데
오히려 A는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가벼운 강박 같은 게 있는 아이라
다른 친구들이 규칙 어기는 걸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아이여서
수업을 방해하거나 하는 모습은 없었으나
쉬는 시간에 특유의 에너지로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며 노는 아이였다면
메디키넷 복용 이후로는
조심성 넘치고
배려심 넘치는 아이로 변했다고 했다.
뭔가 아이를 약으로 일부러
구속하는 기분이라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영화 [겟 아웃]을 본 사람이면
이해할 것이다.
겉모습은 내가 아는 사람인데
행동이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는 그 묘한 기분
그 작은 메디키넷 한 알이
내가 알던 아이의 모습을
지워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열심히 또 카페나 글을 검색해본 결과로는
초기에 적응하는 동안에는
그동안 떨어졌던
주의 집중력이 확 강해지는 거라
약을 먹은 상태가
원래 아이가 가지고 있어야 할 상태라고 했기에
좋은 방향의 변화라고 생각하기로 했지만
그래도 갑자기 달라진 모습에
초반에는 약 복용을 멈춰야 할까 하고
많이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메디키넷을
20mg까지 올린 상태지만
처음 5mg 로도
아이의 변화가 정말 극적이라
약이란 게
이렇게 놀라운 효과가 있다는 게 좀 무서웠다.
집에서도 동생과 엄마인 나를
평소보다 10배는
더 배려해주는 모습이 나타났기 때문인데
동생이 자신의 장난감을 만졌을 때
평소 같았으면 하지 말라고
소리를 쳤을 상황인데도
차분하게 동생이 같이 놀고 싶은 것 같은데
이러면
본인이 노는 게 방해가 된다고
도와달라고 하는 모습 등에
진짜 놀랐었다.
이게 메디키넷이란
안경을 쓴 A의 본 모습인 걸까?
아니면 엄마의 욕심이란
갑갑한 구속복을 입은
A는 원하지 않는 모습인 걸까...
뭔가 육아가 더 수월해진다는 점에서
ADHD약은 엄마 입장에서
정말 고맙지만 뭔가 미안해지는 약이었다.
하지만
8시간의 지속 기간을 보인다는 메디키넷은
우리 아이에겐
6시간 정도밖엔 그 효력이 지속되지 않았다.
신데렐라의 마법이 12시면 풀리듯
8시에 먹여 9시쯤 효과가 나타나더니
2시 반에서 3시 사이가 되면
아이가 굉장히 예민해지면서
짜증이나 불만이 터지는 일이 잦아지더니
3시 반쯤이 되면 원래의 행복하지만
사람들이 힘든 원래의 A가 되었다.
그리고 그 뒤로 저녁을 먹이고
이 닦고 씻고 재우는 동안에는
역시나 밥 먹이느라 애걸복걸하거나
윽박지르거나 화를 내야 했고
얼른 씻고 이 닦자는 나의 지시를
열 번은 무시하는 상태가 반복되었다.
아예 몰랐다면 기대도 하지 않았겠지만
약을 통해 달라진 아이의 모습을
이미 맛본(?) 상태라
약효가 떨어질 때의 날카로운 짜증 상태와
약효가 완전히 사라진 후의
천진난만한 장난꾸러기 상태가
모두 그 전보다 더 버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고마운 6시간이라고 생각해야 하는데
왜 이렇게 짧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버리는...
그리고 약효가 지속될 때 아이는
배려심 많고 친절하고 생각이 깊은 대신
매우 불안하고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자주 나타났다.
뭘 하고 놀지 결정 못했을 땐
거실을 서성거리며 계속 돌아다니기도 했고
어디 나가자고 하면
낯선 곳에 가자고 하는 걸 못 참아야 하기도 했다.
여름에 복용을 시작했기에
야외에 나가면 벌레 등이 자주 보이는 시기였는데
특히 거미나 거미줄을 보면 무섭다며
그쪽 길로 아예 가지 않으려는 등의 모습이 보여
엄마 입장에선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물론 한글 공부를 새로 시작한 이후엔
가르친 걸 바로바로 받아들여
짧은 기간에 한글이 굉장히 많이 늘어서
그 부분은 만족스러웠지만
지금 이 상태로는
아이가 힘들어하는 모습이
너무 안쓰럽게 느껴져서
의사에게 불안함을 느끼는
아이의 상태를 공유하고
뭔가 방법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ADHD와 A' 카테고리의 다른 글
풀배터리 검사 끝날때까지 끝난게 아니다 (0) | 2023.03.29 |
---|---|
풀배터리 검사, 준비부터 할 일이 많다. (0) | 2023.03.29 |
ADHD로 진단받고 나서 하면 좋은 일들 (0) | 2023.03.28 |
첫 소아정신과 진료를 받고 나서 (0) | 2023.03.27 |
ADHD 진단 검사, CAT에 대한 이야기 (0) | 2023.03.2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