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이사 온 동네는 그전 동네와는 분위기가 좀 다르다. 아무래도 신축의 어수선함도 있고 아직 서로 성향이 파악 안된 아이들이 만드는 작은 문제들도 보인다. 그래도 나름 잘 적응해나가는 것 같아 안쓰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다.
얼마전 학교에서 발표회를 했다. 본인들의 장기를 모아 자랑하는 형식이었는데 A는 같은 반이면서 같은 동에 사는 아이들과 함께 태권도를 준비해서 멋지게 발표를 하고 왔다. 다들 진도는 다르고 한꺼번에 모일 시간은 내기 어려워서 도대체 어떻게 준비를 하려나 했건만 한번 모여서 연습을 하고 자신이 모든 동작을 다 외워올테니 집에서 연습하고 와서 정 모르겠으면 자신을 보고 따라하라고 했다는 A의 말에 감탄했다. 나름 리더쉽이 있는 느낌이랄까?
새로 사귄 친구들 중에는 차분하고 예의 바른 아이도 있고 조금 장난기가 심한 아이도 있다. 그 중 집에 몇번 놀러온 아이 중 나를 놀라게 만든 아이가 있었는데 손에서 휴대폰을 떼어놓지 못하는 아이였다. 고작 1학년인데 놀러온 친구집에서 와이파이를 직접 찾아서(이미 연결되어 있는 휴대폰의 설정에 가면 와이파이를 잡을 수 있는 큐알코드가 있다고 한다. 나는 몰랐는데 이 친구가 집에 와서 내 휴대폰으로 이걸 찾는 법을 알려주고 잡았다.) 영상이나 게임등을 하는 모습도 놀랐는데 한번은 A가 나와 공부하는 시간이라 같이 놀지 못한다고 미리 이야기했는데도 우리집에 와서 A가 공부하는 동안 1시간이나 휴대폰을 하고 노는 모습을 봐서 좀 당황했다. 같이 놀 수 없다고 이야기했는데도 온 것도 의아했고 와서 A와 놀지 못한다는 점을 별로 아쉬워하지 않는 모습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알고보니 그 친구는 거의 매일 다른 친구들 집을 찾아다니면서 본인의 집에는 친구들을 초대하지 않는 아이였다. 보통 엄마한테 누구집에서 놀고 온다고 통보식으로만 통화를 하는 편인데 엄마 역시 쉽게 그러라고 하시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휴대폰이나 미디어 등의 제한 시간이 아예 존재를 하지 않는 것 같았다.
A가 요새 빠져있는 인터넷 캐릭터가 있다.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캐릭터인데 영상의 수준도 조악하고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그 캐릭터의 만듬새도 영 어설프다. 그런데도 그 캐릭터가 너무 좋아서 매일 그 캐릭터 사진을 한 장 씩 출력해달라고 해서 따라그리고 종이접기를 하고 색칠을 하고 있다. 한 번 꽂히면 본인이 질릴때까지 계속 몰입하는 ADHD의 전형적인 하이퍼포커스 증상이기 때문에 아이가 이미지를 보고 색칠하거나 만드는 건 그대로 두지만 영상 자체는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한 상태다. 그러다보니 새로운 영상에서 나온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 등에는 소식이 좀 늦는 편이다. 근데 바로 위의 말한 그 친구는 미디어 제한이 없다보니 그런 새로운 소식을 매우 빨리 접하고 친구들에게 알리는 모양이다. 그래서 서로 사이가 그리 좋지 않던(전학 후 학기 초에 서로 싸운 적이 있었다. 물론 빠르게 화해하고 집에도 놀러오긴 했지만 말이다.) 그 친구와 좀 친해지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친구의 요청사항도 자주 들어주고(본인이 해야할 것을 조금 미뤄든 채)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고 했던 것 같다. 그러다 어제 우리집에 몇시에 놀러오겠다는 이야기를 나눴고 태권도를 다녀오고 난 시간이라 A가 흔쾌히 좋다고 했다고 한다. 태권도에 다녀오자마자 도복을 벗고 옷을 챙겨입고 1층으로 친구를 데리러 간다고 나간 A가 15분 동안 들어오지 않아서 걱정하려던 순간, 아이가 얼굴은 빨갛게 얼고 눈에는 눈물이 가득한 채로 집에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붙들고 물어보니 그 친구가 그새 다른 친구만나 같이 놀자고 새롭게 약속을 해버리곤 기다리던 A를 보고 같이 못논다고 일방적으로 통보를 했다고 한다. 그 친구와 놀고 싶던 A는 나와의 약속이 먼저 아니냐고 항변했고 새 친구와 놀고 싶던 그 친구는 그럼 내일 놀자고 제안했단다. 하지만 복지관에서 받는 놀이치료와 사회성 치료 때문에 금요일에는 시간이 없던 A가 그럼 새로운 친구와 내일 놀고 나와는 오늘 놀자고, 나는 오늘밖에 시간 없다고 설명했지만 결국 그 친구는 새 친구와 놀겠다고 가버렸단다.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났지만 꾹 참았다가 엘리베이터에서 울었다는 A를 그냥 꼭 안아주었다. 친구 사이의 일은 엄마인 내가 모든 컨트롤 해줄 수는 없는 일이니까. 어떤 부분이 화가 난 건지 물어보자, 약속을 어긴 게 제일 화가 난다고 말했다. 원래도 본인과 엄마아빠가 한 약속을 어겨도 제일 화를 내고 감정 조절이 안되는 녀석인데 친구가 약속을 어긴 부분이 속상했지만 화 안내고 울지도 않고 이야기하고 온 점만 해도 아주 칭찬해주고 싶었다.
너를 속상하게 하고 너와의 약속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은 좋은 친구는 못 될 것 같다고 단호하게 말해주었다. 좋은 친구는 니 마음을 들여다볼 줄 알고 서로 배려하는 친구라고도 말해주었다. 아직 1학년이라 약속의 소중함이나 너의 마음을 잘 읽어내기 어려웠을진 모르지만 다른 친구들 중에서 너와의 약속을 그렇게 가볍게 취소하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면 다른 친구들보단 너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 같으니 그 친구와 관계에 너무 매달리지 말라고 했다. 너는 너무 소중한 사람이라 너라는 존재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에게 너의 시간과 노력을 뺏기는 건 너무 아까운 일이라고 말해주고 너를 아끼고 소중하게 여겨주는 사람에게 그 시간과 노력을 더 쓰라고 말해줬다.
아이가 내 말을 백프로 다 이해했을꺼라곤 보지 않는다. 약효가 없던 시간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약효가 없는 시간에 친구사이의 트러블을 1학년 답게 그리고 씩씩하게 맞부딪히고 온 게 참 대견했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걸 많이 알고 있는 친구라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나름의 노력을 했던 것도 멋지다고 생각했다. 저녁을 먹을 때까지도 여전히 속상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 다는 아이에게 그런일은 아주 속상한 일이니까 그걸 잊는데도 시간이 걸린다고 이야기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경험을 해봐야 내가 일부러 돈을 들여 가르치고 있는 사회성도 더 나아질꺼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스스로 나에게 맞는 좋은 친구과 나와 맞지 않는 친구를 구분하는 방법 역시 이런 경험을 통해 스스로 만드는 것이겠지. 1학년이 끝나가는 시점에 생긴 이 일이 아이의 마음을 한 뼘 더 성장시킬 계기가 되어주었길 빌어본다.
'ADHD와 A' 카테고리의 다른 글
ADHD 약 복용은 부모님 선택이에요. 라는 말(ADHD약물복용/초등입학전 약물복용/소아정신과진료) (0) | 2024.01.05 |
---|---|
ADHD 1년 치료비 정산(놀이치료+사회성치료+약물치료) (0) | 2023.12.20 |
늘 두려운 담임선생님과의 전화,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0) | 2023.10.30 |
A의 충동성이 나아지고 있다. (0) | 2023.10.23 |
놀이치료와 사회성 그룹치료, 비용은 얼마나 들까? (0) | 2023.10.18 |
댓글